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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한, 국민의 저항으로 막 내리는 ‘독재’의 피해는 국가와 국민의 몫

‘선거실패, 국가실패’ 26일 출판기념회 앞두고 ‘스물일곱 번 째 이야기’전개

이건구기자 | 기사입력 2021/08/22 [13:52]

조광한, 국민의 저항으로 막 내리는 ‘독재’의 피해는 국가와 국민의 몫

‘선거실패, 국가실패’ 26일 출판기념회 앞두고 ‘스물일곱 번 째 이야기’전개

이건구기자 | 입력 : 2021/08/22 [13:52]

▲ 조광한의 '선거실패, 국가실패' 출판기념회 안내문.(사진=GAP출판사)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오는 26일 여의도특별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선거실패, 국가실패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언젠가는 국민의 저항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독재 권력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에 대한 스물일곱 번 째 이야기를 통해 다음해 선거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조 시장은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25), 아프리카 우간다의 이디 아민 대통령(26)에 이어 21민주주의란 때로는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피의 독재라고 알려진 독재자,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의 악행과 비극적 말로를 소개했다.

 

조 시장은 이번 이야기에서 “1973 9 11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974 12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집권 17년 동안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는 독재정치를 이어 간 피노체트로 인해 칠레의 민주주의는 중단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으며 그가 몰락한 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납치와 암살은 끊이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2015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이나 실종 3225, 구금고문 등 인권탄압의 피해자는 4만여 명, 강제 연행은 10만 여명에 달하고, 당시 인구 약 천만 명의 10%에 달하는 백만 명이 독재를 피해 해외로 도망쳤고, 산이나 사막 등지에 실종자들을 유기했다는 문서가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다고 피노체트의 만행을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피노체트의 만행은 1986년 민주화운동으로 시작된 국민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1988 10월 마지못해 치러진 대통령 집권 연장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했고 마침내 1990 3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영국으로의 망명과 귀국 후 가택연금 상태에서 인권유린 등의 혐의로 300여 건의 기소를 당했지만 형사처분을 받기 전 2006 12월에 사망한 피노체트는 시신마저 피해자들에 의해 훼손될 것이 두려워 사망 후 화장을 유언으로 남길 정도로 비참한 말로를 보냈다.

 

조 시장은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독재는 국민의 저항을 불러오고 언젠가는 끝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다다음해 치러지는 대선에서 독재의 성향을 가진 후보를 판별하는 예리한 눈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갖춰 줄 것을 시민들에게 강조했다.

 

다음은 선거실패, 국가실패 스물일곱 번 째 이야기 전문이다.

 

▪️선거 실패.., 곧 국가의 실패.. 스물일곱 번 째 이야기입니다..!!

 

조광한 입니다..^^

 

"민주주의란 때로는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해서 피의 독재라고 알려진 독재자,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입니다.

 

1973 9 11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974 12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집권 17년 동안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는 독재를 했습니다.

 

쿠데타 당시 대통령궁을 전투기로 폭격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포위하고 포격과 사격을 가해

저항하던 대통령의 경호원들과 측근들을 살해했습니다.

 

투항하면 살려준다.”는 권고에 결국 아옌데 대통령은 같이 싸운 동료들을 위로하고 투항하라고 한 후, 자신은 혼자 집무실로 들어가 총으로 자결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궁을 지키던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곧이어 저항하는 모든 세력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남아 미국으로 망명한 전 외무장관까지 끌고 와서 죽였습니다.

 

쿠데타 직후 반대파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하는 등 일주일 만에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3개월 동안 수천 명이 처형됐습니다.

 

쿠데타 직후 반동분자 색출을 명분으로 산티아고 월드컵경기장에 반대파 민간인들을 모아놓고 무참히 사살해 옆에 흐르는 마포초 강이 피로 붉게 물들 정도였습니다.

 

피노체트로 인해 칠레의 민주주의는 중단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가 몰락한 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납치와 암살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이나 실종 3,225, 구금고문 등 인권탄압의 피해자는 4만여 명, 강제 연행은 10만 여명에 달합니다.

 

당시 인구 약 천만 명의 10%에 달하는 백만 명이 독재를 피해 해외로 도망쳤고, 산이나 사막 등지에 실종자들을 유기했다는 문서가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피노체트는 망명 온 나치 전범들을 국가정보부 DINA에 등용하고 그들을 동원해 반정부 인사들을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또 반대파를 외국까지 쫒아가 암살했는데, 이를 위해 남미의 여러 군부 독재자들과

'국제협력 군경테러조직'을 창설하여 반정부 인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암살하는 등 합동작전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잔인했던 피의 독재도 결국 국민의 저항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86년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거세져 마침내 1988 10월 마지못해 치러진 대통령 집권 연장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피노체트가 패배했습니다.

 

그는 1990 3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영국으로 망명했고, 1998 10월 런던에서 영국 사법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2000 3월 건강을 이유로 석방된 뒤 칠레로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 가택연금 상태에서 인권유린 등의 혐의로 300여 건의 기소를 당했지만 형사처벌을 받기 전 2006 12월에 사망했습니다.

 

장례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고문으로 아버지를 잃은 대통령의 거부로 국장(國葬) 대신 군장(軍葬)으로 치러졌으며, 시신은 피해자들에 의해 훼손될 것을 두려워한 피노체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습니다.

 

독재는 국민의 저항을 불러오고 언젠가는 끝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년 대선에서 독재의 성향을 가진 사람을 판별하는 예리한 눈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차우셰스쿠아민피노체트 3명의 독재자를 살펴봤습니다. 다음에는 20세기 이후 선진국으로 올라선 나라와 후진국으로 추락한 나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경기북도일보(GNN)의 모든 기사는 기사 협력사인 (주)아시아뉴스통신, 뉴스제휴사인 다음, 구글, 뉴스줌에 동시보도 되고 있습니다*


이건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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