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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덕 칼럼] 최현덕의 남양주愛 (14) - 한국 천주교의 요람, 마재성지

오종환기자 | 기사입력 2019/08/22 [10:36]

[최현덕 칼럼] 최현덕의 남양주愛 (14) - 한국 천주교의 요람, 마재성지

오종환기자 | 입력 : 2019/08/22 [10:36]

▲ 최현덕/(전)남양주 부시장    

 

성지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제 시선을 끈 건 긴 나무판 위에 철사줄로 둘러쳐진 동그란 금속제 원판입니다.

 

제 눈에는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두른 채 무거운 칼을 목에 걸치고 있는 예수님 형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의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만발한 벌개미취꽃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정갈하고 고요함이 깃든 이곳은 속()이 아니라 성()의 공간입니다.

 

조안면 한강가에 자리한 마재성지에 들러 신부님을 뵙고 왔습니다. 부임한 지 얼마 안되셨지만, 이곳의 역사와 상징성에 대해 깊이 알고 계셨습니다. 공감과 이해 속에 폭넓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재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의 요람과도 같은 곳입니다. 조선후기인 1850년대 많은 유학자들이 부국강병과 개혁의 방편으로 서양 학문에 눈을 뜹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우리 천주교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정약종과 그의 형제들, 친인척들이 있습니다.

 

뿌리깊은 유교사회에서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서양 세력이 총과 대포로 위협하며 문호 개방에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서양 종교를 믿는 건 매국노와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온갖 회유와 모진 고문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스러져간 수 천의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순교자라 부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입니다. 정약전의 동생이자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둘에 비해 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가장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냅니다.

 

중국 주문모 신부를 모시고 최초의 신도회인 명도회(明道會)를 이끌며 포교에 앞장서고 한자를 모르는 신도들을 위해 최초의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를 편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유박해 때 순교하게 됩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의 아내 유조이(체칠리아), 큰 아들 정철상(가를로), 둘째아들 정하상(바오로), 딸 정정혜(엘리사벳)도 차례로 순교를 합니다.

 

한 가족 5명이 모두 순교당한 일은 세계 천주교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로, 바티칸 교황청은 그들을 '성가족(聖家族)'으로 받들고 기리게되죠.

 

이렇듯, 마재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자랑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성지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국내외 순례객들의 방문이 이어집니다.

 

바로 옆에는 정약용 선생의 생가와 묘역, 사당과 실학박물관이 있습니다. 형제들을 비롯한 당대의 실학자들이 자주 모여 공부하고 신앙의 공동체를 꿈꿨던 수종사와 천진암도 강과 산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실학을 한 눈에 보여주는 경기도 실학박물관도 설립돼 있습니다.

 

마재성지의 교회 이름은 도마성전입니다. 그 현판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못한 제자 도마는 예수의 상처난 몸에 손을 대보고서야 비로소 믿음을 회복합니다. 눈으로 보지않고도 죽음으로 믿음을 증명한 조선시대 순교자들을 기리는 뜻일 겁니다.

 

세계적인 성지인 이곳 일대는 모두 묵상과 순례, 추모와 기억, 학습과 다짐의 공간입니다. 지역의 여러 자원과 인력, 환경을 서로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여건을 만든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날 겁니다. 그 날을 꿈꿔봅니다.

 

기자 실습생 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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